작가 신수원의 전시회를 적잖이 다녔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러 사람이 관람 중에 미소를 짓
는 것을 보았다. 관람자의 태도와 미학적 완성도는 별개의 것이지만, 아무튼 작품으로 사람들
의 마음을 환히 밝힐 수 있는 미술 작가는 흔치 않다. 그만큼 그녀의 그림은 심상 반응이 즉
각적이며 아이들도 좋아할 만큼 잘 읽힌다. 보는 그 순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 따스하고
아늑해지는데, 어떨 땐 품에 안고 도망가서 다락방 같은 비밀 놀이터에 숨겨놓고 혼자만 보고
싶다. 그만큼 사랑스럽다. 이번 신작(新作)들에서는 그러한 작가 특유의 애틋하고 정겨운 구성
미(構成美)가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어린 시절 어쩌다 받아 본 종합 과자 선물처
럼, 그녀가 그간의 작품활동을 되돌아보며 마련한 일종의 종합세트인 [키다리 아저씨와 고래
등] 을 열어보기만 하면 된다. 개봉박두다.
예고편으로 소개하자면, 어떤 그림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에서 전설의
동물인 토토로가 그 특유의 소리를 내며 등장할 것 같고 또한 그 그림 속 소녀는 다카하타 이
사오의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추억을 방울방울 불어내 줄 것만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다
른 작품 “고래잡이”에서는, 아이들이 고래를 초대하기 위해 고래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신수
원은 통이 큰 작가다. 그녀는 고래를 통째로 데려와 그 뱃속에다 집을 지어버렸다. 그래놓고
아이들과 키다리 아저씨를 초대했다. 단골 오브제인 ‘집’ 은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의 출발점이
자 종착지라고 할 만큼 그녀에게는 감성 공간으로의 의미가 특히 더 깊다. 포유류인 고래의
배 속에 모체의 자궁처럼 아늑하게 집이라는 공간을 구현한 것은, 그녀가 고래와 집을 정서적
으로 동일시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 신수원의 세상은 누구에게나 ‘꿈’이다. 필자도
미술가가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주인공이 해저에다 박공지붕의 집을 그렸다는 설정
을 했고 그렇게 캐릭터를 통해 ‘꿈’을 표출했다. 그런데 그 상상을 이번 신수원의 작품에서 현
실로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우연이고 양식적인 측면도 달랐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가져다가 심연의 근원적인 판타지를 실현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작가 신수원의 미술 세계가 가진 본질인 동시에 궁극이다.
누구든 창작자들이라면 자신의 세계관을 늘 성찰해야 한다. 또한 그 반대의 상태를 스스로
경계해야 함은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미술 쪽은 관념의 수렁에 빠져있거나 다양
성이라는 긍정의 커튼 뒤에 숨듯이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순진한 대중을 속이긴 쉬워도 모두
를 속이지는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다. 어쨌거나 어설픈 철학을 미술에서 하는 것을 보
는 것도 피곤하니, 환기하고 싶을 땐 작가의 진정성이 깃든 청량한 작품들을 눈에 담으면 된
다. 단, 취향의 문제는 당사자의 몫이다. 그건 그렇고, [키다리 아저씨와 고래등] 이후는 어떨
까? 다음번에 신수원의 세상을 방문하면, 집의 담벼락에 “개조심”이 아니라 “고래조심”이라고
써 놓은 아이들의 낙서를 볼지도 모르겠다. 기대하시라, 그녀의 마을엔 환상극장이 있다!
2024년 여름. 영화감독 전소현
